문자나 화면(畵面)으로 판을 만든 후 먹을 칠해 찍는 과정을 인쇄라고 한다. 만약 이 정의에 거의 맞물리는 탁본(拓本) 제작도 인쇄라고 하면, 중국의 인쇄 활동은 기원전까지 거슬러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참다운 인쇄는 조판인쇄(雕版印刷)부터 인정한다. 즉 목판에 양각으로 글이나 화면을 새긴 후 그 위에 먹칠을 하고 책을 찍는 방법이다. 그 가장 오래된 현존 문물로는 1900년 둔황(敦煌)에서 발견된 '금강경(金剛經)'(868년), 1944년 청뚜(成都)에서 발굴된 '다라니경주(陀羅尼經註)'(757∼900년), 1966년 한국 불국사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704∼751년) 등이 있다. 그러니까 조판인쇄는 약 8세기부터 시작된 셈이다.
위의 문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이 불국사에서 발견된 것이므로 한국 학계에서는 조판인쇄의 발명자가 한국이라고 주장하고, 중국 학계에서는 그것이 중국에서 인쇄된 후 한국으로 가져간 것 이므로 발명권이 중국에 있다고 맞선다. 8세기 경부터 시작된 조판인쇄는 그후 계속 발전해 오다가 19세기 중엽 서양 인쇄술의 전파로 쇠퇴됐다. 지금도 옛날에 쓰던 목판으로 책을 찍어 파는 것을 간혹 볼 수 있는데 이는 예술 소장품이지 참다운 인쇄물은 아니다.
중국 인쇄사에는 또한 활자인쇄가 있다. 11세기 필승(畢昇)이란 사람이 흙으로 구어 만든 활자를 발명했다. 독일의 구텐베르그(?-1468)의 활자 발명보다 4백년 정도 앞섰다. 후세에 석(錫)활자·철(鐵)활자·동(銅)활자 등도 개발됐으나 활자인쇄가 광범위하게 쓰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한국에서는 활자인쇄를 중국보다 퍽 광범위하게 쓴 듯하다.
아마 알파벳을 쓰는 문화권에서는 활자를 20∼30가지 정도 만들면 되지만 한자권에서는 수천 가지 내지 수만 가지를 만들어야 하므로 조판인쇄보다 경제적이지 않으므로 보급되지 못한 듯 하다. 그러므로 활자인쇄 발명자의 통설이 구텐베르그로 돼 있는데 중국인들은 이를 아주 아쉽게 생각한다.
그 다음이 컴퓨터에 의한 조판과 인쇄다. 필자가 1987년 처음 한국에 갔을 때 한국은 이미 컴퓨터로 활자를 대체하고 있었다. 필자가 돌아와 세계 굴지의 출판사인 중화서국(中華書局)의 책임자와 편집자들에게 컴퓨터를 도입할 것을 건의했지만 거절 당했다. '컴퓨터는 슈퍼마켓에서 돈이나 주고받는데 쓰면 몰라도' 하며 필자를 거의 정신나간 사람 취급을 하면서 말이다. 그러던 것이 약 10년 후부터는 컴퓨터 조판을 대거 활용하게 됐고 다시 5년이 지난 지금은 활자인쇄가 거의 멸종되다시피 했다. 과학의 가공할 힘을 잘 말해주는 실례라고 하겠다.
중국 인쇄술 史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