톈안먼(天安門)을 중심으로 '환(環)'이라고 부르는 둥근 고리모양으로 겹겹이 둘러싸인 베이징. 지도만 보고서는 그 미로의 정체를 파악할 길이 없다.
마치 정면에서만 바라보면 끝없이 단조로운 건물들이 일렬횡대로 늘어선 것처럼 보이는 즈진청(紫禁城)만 해도 그렇다.
베이징의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그 속에는 크고 작은 미로들이 헝클어진 전선처럼 얽혀져 있어서 방향감각을 잃으면 좀체 빠져나오기 힘들다.
그러나 베이징이 변하고 있다. 미로 같은 구불구불한 길들이 사통팔달로 쭉쭉 뻗어나가고 1년 365일 새로운 건물들을 짓는 망치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평균 두 달에 한번 지도가 바뀔 정도로 정신 없이 변화하고 있는 베이징에서 이제는 토박이 베이징인들마저도 "옛날엔 어땠더라?" 하면서 흑백영화 속의 한 장면을 떠올리기라도 하듯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다.
'후퉁(胡同=작은 뒷골목)'들도 그렇게 사라져 가고 있다. 언젠가는 죽은 마우저뚱(毛澤東)처럼 골동품 상점 안의 기념품으로 전시되고 말지도 모르겠다.
후퉁이 사라지면서 미로 같은 베이징의 골목길 안에 담겨 있는 무수한 '베이징 이야기'들이 함께 사라지고 있다.
'작은 골목(뒷골목)'쯤으로 번역되는 후퉁은 주로 베이징의 서민들이 살고 있는 전통적인 주택가 골목을 지칭한다. 후퉁의 연원은 위엔(元)나라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베이징이 위엔의 수도가 됐을 때 주민들의 거주지역을 몇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구역 사이를 긴 통로로 분할했던 것이 오늘날 후퉁의 기원이 됐다.
후퉁은 원래 몽고어의 '우물'을 의미하는 'Hottong'에서 유래됐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당시 우물이 있던 곳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 살았기 때문에 생긴 말이라는 것이다.
후퉁은 베이징 곳곳에 그 '흔적'을 유지하고 있다. 황제나 고관대작들이 살았던 웅장한 건축물들은 '보존할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보호를 받고 있지만 그 나머지 낡고 오래된 것들은 다 폐기처분 하겠다는 기세로 베이징에 개발붐이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후퉁들은 '철거대상 1호'가 됐다. 그래서 '흔적'으로밖에 남아 있지 못하게 됐다.
낡고 오래된 것들은 언젠가는 사라지게 마련이지만 베이징의 후퉁이 사라진다는 것은 중국의 한 후퉁 보존론자가 말하듯이 '베이징이 사라진다'는 의미와도 통할 수 있다.
'황제들의 세상'이 베이징을 전체적으로 상징할 수는 없다. 오히려 '토박이 베이징인들의 세상'인 후퉁이야말로 베이징을 들여다볼 수 있는 진정한 문화유산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다.
그곳에는 오래된 술과도 같은 베이징의 깊은 맛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역사에는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그 역사를 만들고 목격해왔던 수많은 베이징인들의 이야기들이 숨어 있으므로 이제부터 후퉁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베이징인들의 이야기가 집단적으로 사라지기 전에 말이다.
박현숙의 胡同 이야기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