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파리로 떠난다 (1)
2001년 4월 16일 월요일 날씨 런던: 그런대로 푸근함/파리: 아 추워, 게다가 드문드문 비까정..
드디어 파리로 출발한다! 아침 10시 23분에 떠나는 기차라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서둘러 워털루 역으로 갔다. 아직 환전도 안 했고 그다지 많이 챙기지도 않아서 약간은 걱정되었지만 지금 사는 곳이 파리랑 가깝다는 이유만으로도 왠지 상당한 안심이 되었다. 만약 한국에서 출발하는 거라면 이거저거 신경 엄청 쓰고 몇 번의 검사에 빠진거 없나 철저히 했겠지만 돌아갈 곳이 여행지에 가까이 있다는 것은 심적으로 많은 안정이 되는 것 같다. 일단 역에 가서 근처 환전소에 가서 여행 경비를 프렌치 프랑으로 바꾸고 (학생이라 하면 커미션이 없다) 원래 목요일 돌아오기로 한 표를 금요일로 바꾸었다. 너무 서둘러서 이거저거 보면 제대로 감상을 못할것 같아서..^^ 그리고 근처 WH Smith에 가서 여행자를 위한 간단 불어책을 사서 쓰일만한 표현에 동그라미를 쳐서 연습을 했다. 봉쥬르, 메르씨 보꾸, 엑스큐즈 므와..앵앵 거리면서 흉내를 내도 영락없이 꽝인 발음이다..흑흑..
체크인을 끝내고 유로스타에 몸을 실었다. 파리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여행은 언제나 사람을 설레게 한다. 3시간이 걸리는 여행에서 유로채널을 통과하는 시간은 20분 남짓이며 그냥 꺼먼 터널을 통과하는 거라 아무것도 안 보였다. 터널을 투명으로 만들었으면 디즈니 만화영화 '인어공주'의 'Under the Sea'의 한 장면이 보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 파리북역(Gare du Nord)에 도착해서 첨 느낀 것은 넘 추웠다는 거였다..흑. 이제 4월 말인데 추워봐야 얼마나 춥겠냐는 생각에 반팔 티 두개에 얇은 봄 잠바가 다였는데 이건 2월의 막추위같은 차가운 공기였다. 빨리 숙소부터 잡아야 겠다는 생각에 일단 지하철표를 사기 위해 역 창구에 줄을 서서 10개 짜리 묶음 표(Carnet)를 샀다. 사기전 '뒤 까르네 실부플레' (two carnets please)를 열심히 외웠으나 결국은 '뚜 까르네 실부플레 플리즈'라고 얘기를 해버렸다. ^^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관광안내소 같은게 있어서 들어가서 파리 지하철 지도(Plan de Paris 플랑드 파리)를 하나 얻었는데 스탑 아줌마 무지 불친절하게 지도를 던져줬다..잉.
파리는 우리나라처럼 그냥 1호선 2호선 이렇게 14개의 선이 얽혀 있다. 반경 400m 내에 꼭 지하철(Metro)이 있고 간격 간격이 무척 짧아서 맘 잡고 걸으면 지하철 역을 10개 넘개도 지날 수 있다. 은정님이 알려준 Dupleix역의 호텔을 찾아갔다. 들어가니까 인상이 그다지 좋진 않은(그리고 주인이 아니라 잠시 여기 놀러온 동네 아저씨처럼 보이는) 아저씨가 나온다. 젤 첨 내가 파를레 부 앙글레? (영어 하실 수 있으세요?)라고 물으니까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앗 빨리 불어책을 뒤져보자! 우린 너무 추워서 코를 훌쩍훌쩍 거리며 책을 찾기 시작했으나 뭐시기도 약에 쓰려면 없다더니 왜 그렇게 찾기가 힘들던지..찾다가 웃겨서 죽을 뻔 했으나 이거 참 웃을 수도 없고.. 영어를 한 마디 못하는 아저씨와 불어를 한 마디 못하는 우리들 사이에 책에서 적당한 표현을 찾을 때까지 걸린 5분의 시간은 정말 썰렁함의 극치였다..가격을 물었을 때 (쎄 꼼비앙) 우리의 아저씨 불어로 얘기해주니 얼마인지 알 수가 있나. 답답한 아저씨 드디어 문에 손가락으로 써준다..잉..그래서 겨우 방을 잡을 수가 가 있었다. 휴...
방에 여장을 풀고 짧은 티 두개에 잠바 겹쳐 입고(겹쳐만 입는다고 레이어드 룩이 아닌데..) 일단 걸어서 파리의 동태(?) 를 살피기로 했다. 이스터 휴일 마지막 날이라서 그런지 시내는 비교적 한산했다. 호텔에서 에펠타워 까지는 걸어서 얼마 안 걸렸다. 음 잘 있군..^^ 우리는 이왕 내친김에 샹젤리제 거리도 걸어보기로 했다. 가다가 가판대에서 미쉘린 지도를 24프랑 주고 사서 방향감각 없는 불쌍한 두 아이는 지도에 모든걸 의지한채 좌충우돌 샹젤리제 거리로 접어들었다. 빙빙빙 돌아온지라 발바닥이 이미 마비가 된 듯 했다. 주희는 중간에 배가 고파서 아무 레스토랑이나 들어가자고 하고 나는 죽어도 홍합(여기서 편의상 우린 '옹아'라 칭하기로 했다. ^^) 요리 전문점인 Leon을 가겠다고 우겼다. 그러는 와중에 주흰 삐져가지고 우린 서로 20m 간격을 유지하며 따로 걷다가 드디어 샹젤리제 거리 끝 부분쯤에서 Leon을 발견했다.
후다다닥 기쁜 마음에 들어갔다. 여기저기 소문이 무지 많이 난 곳이라 사람들로 발디딜틈 없이 꽉 차 있었다. 옹아요리로 유명한 곳이라 메뉴판도 옹아모양이었다. 메뉴에는 영어라곤 한마디도 없었으나 다행히 사진이 나와 있어서 대충 감으로 10종류가 훨씬 넘는 옹아 요리중 젤 맛있게 보이는 요리를 시켰다. 바게트와 더불어 영국의 칩스와는 다른 프렌치 프라이 그리고 커다란 일인용 냄비에 옹아가 먹음직스럽게 담겨서 나왔다. 음~~우리나라에서 그냥 아무 양념없이 끓여 먹는 것과는 정말 다른 맛이었다. 내꺼는 치즈, 샐러리, 와인외 기타 비법이 담긴 양념으로 국물을 내고 주희꺼는 와인, 토마토, 그 외 알 수 없는 특수 양념으로 국물을 낸 아주 깊이 있는 놀라운 맛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 손으로 껍질을 잡고 속에것을 먹고 껍데기로는 국물을 떠먹는다. 그리고 빵을 국물에 찍어 먹는다. 나도 그렇게 먹었는데 우...우리 나라에서 소주와 더불어 1-2000원에 먹을 수 없는 싼 안주를 이렇게 하나의 요리로 맛있게, 다양화 시킬 수 있다는 프랑스 인의 솜씨에서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너무 맛있게 먹다보니 배가 부르지가 않았다. (정말 맛있는 걸로 배를 채우면 불쾌한 배부른 느낌이 오지 않는다.^^) 여전히 바깥 날씨는 추웠지만 샹젤리제 거리를 따라 개선문으로 올라가서 주희가 어디 여행 가이드에서 보았다던 '리자'라는 면세점을 찾고자 열나 헤맸지만 허탕만 치고 내일을 기약하며 호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집에 와서 우리가 돌아다닌 행로를 지도에서 찾아보니 엄청난 거리였다..뜨아.. 방에서 TV를 틀어놓고 이 나라에선 뭘 보고 사나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며 보았으나 부르릉 부르릉하는 불어를 알아들을리는 만무했다. 영국 TV 포맷을 따라한 프로그램이 몇 개 있고 또 영국 가수의 CD 광고를 하는것으로 보아 방송에서는 영국의 파워가 강하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지나가는 소리로 주희한테 '여기서 1년동안 불어 TV 열심히 보면 우리 불어 잘 할 수 있게 될까?' 하고 물으니까 '언니, 우리는 유아가 아니야. 아마 자폐증과 우울증이 겹쳐 폐인이 될껄?' 그래서 서로 까르르르 거리며 웃었다. 나는 같은 유럽 언어라도 내 성격이 그리 낭만하고는 거리가 먼 탓인지 비음이 많이 섞이고 부드럽게 들리는 불어보다는 발음 하나하나가 분명한 이탈리아어나 스페인어가 더 듣기 좋다는 생각을 했다. 내일은 더 많이 걸어야 되므로 일찍 자기로 했다.
아 맞다. 밤에 우연히 CNN에서 우리나라의 이봉주 선수가 보스턴 마라톤에서 우승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여행지에서 듣는 애국가의 감동은 또 다른 것이었다. ^^
Jasmine
Jasmine
*자료제공: Life in London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