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어 못하니까 바보가 된 느낌 - 파리에서 (2)


2001년 4월 17일 화요일 파리의 공기는 여전히 쌀쌀 그러나 오후가 되며 간간히 해가 보인다.

오늘은 죽 걸어다니면서 파리의 모습을 즐기기로 했다. 아침에 가방을 정리해서 나와 길거리의 샌드위치 집에서 커다란 샌드위치를 사서 주희랑 반으로 나눠 먹었다. 또 과일가게 가서 신사과 두개를 사서 디저트로 우걱우걱 씹으면서 길을 걸었다. 일단 지하철을 타고 노틀담 사원으로 출발했다. 파리의 지하철은 청록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자그마하고 네모난 모양으로 노선에 관계없이 모양이 다 똑같고 정말 자주 온다. 한 대 놓쳐도 정말 2-3분도 안 되서 또 한대가 오니까 정말 좋았다. 게다가 런던처럼 1-6존 갈라 놓고 엄청나게 비싼 구간 요금도 적용하지 않는다. 파리외곽인 Ill-de-Paris로 가려면 추가요금이 있긴 하지만 파리 시내의 어디를 가도 녹색 표 한장이면 된다. 런던에 피해 파리의 지하도는 약간 음침/우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을 탈 때마다 악사들이 바이올린을 들고 음악을 연주하고 돈을 걷었다. 첨엔 신나서 10프랑(1파운드=2000원)이란 거금을 주었으나 하도 많이 만나니까 시끄러워서 그냥 자는척 해부렀다. 지하철을 타면서 느낀건데 파리에는 흑인여/백인남 커플이 런던에 비해 눈에 띠게 많은 것 같았다. 역에 내려 잠시 헤맸다. 가끔 표지판이 헷갈리게 되어 있어서 여기가 맞는 역인지 긴가 민가 했다. 그러던중 주희가 갑자기 '언닛, 우리 잘못 내렸어. 여긴 소르티(Sortie)라는 역이야! 저기봐 다 그렇게 적혀 있잖아..잉..' 그런다. 내가 아무리 불어를 모르지만 참 내...'얘야 소르티(Sortie)는 출구(way out)이라는 뜻이란다. 쯧쯧쯧!'

노틀담 성당을 거쳐 그 앞의 최고 재판소를 스윽 둘러보고 세느강변에 늘어서 있는 꽃시장 애완동물 시장 앞을 지나갔다. 개나 고양이나 언제나 보는 건 귀엽다. ^^ 퐁네프 다리를 거쳐 걷고 또 걷고 간 곳은 오르세 뮤지엄 (Musee d'Orsay)였는데 그 줄에 질려 내일이나 모레쯤 가기로 하고 나왔다. 세느강변을 걷는 것만으로도 나는 무척 즐거웠다. 대학때는 여행 다니면 가이드 북에 나와 있는 건물/유적지를 안 보면 정말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알았다. 근데 나이가 들면서 확인도장 찍는 여행보다 그냥 발길 닿고 끌리는 곳에 가서 한껏 느끼는게 더 좋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 먹은 옹아를 잊을 수가 없어 우리는 한 번 더 먹기로 했다. ^^ 그리고 후회하지 않게 넘 맛있었다. 아..조아조아 ^^

내일은 루브르 뮤지엄에 가기로 했으므로 근처에 숙소를 잡기로 했다. 첨 들어간 곳은 총각이 넘 잘 생겨서 맘에 들었는데 방이 없다 해서 여기서 지하철로 몇 정거장 떨어진 곳의 호텔을 소개시켜 주었다. 그런데 그까지 가기는 귀찮고 해서 근처에서 찾아보기로 했다. 하나 찾아낸 유스호스텔은 역시 방이 없단다..잉..어디서 베껴온 싼 숙소 주소 하나를 들고 헤매다가 지나가는 아줌마한테 안되는 불어와 영어를 섞어서 물었다. 아줌마. 첨에 come here 한 마디만 영어로 하고 그 밖에 모든 말을 불어로 한다. 얼뚱..잉...우린 아줌마를 따라 이리저리 다니면서 우리가 알겠다고 멈춰 서면 아줌마 답답해 하며 계속 불어로 설명한다. 솔직히 한 10분여 끌려다니다가 좀 짜증이 났다.(결국 루브르에서 계속 멀어지고..50m라 했는데...감으로도 이 주소가 아니라는 느낌이 왔다.) 친절하다기 보다 무슨 바보들 데리고 훈육시킨다는 느낌이 들어서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는 보디 랭귀지를 필두로 무조건 메르씨, 메르씨(thank you)하고 방향을 바꾸어 딴 곳으로 갔다. 외국 나와서 그 나라 말을 할 줄 모르면 정말 바보 되는 건 시간 문제인 것 같았다. 특히나 프랑스는 정말 끝내주게 영어가 안 통하는 나라다..흑..주희는 적어도 프랑스에서는 우리가 같은 레벨이라며 이 상황을 상당히 통쾌해 했다. 흥!

결국 우리가 찾은 호텔은 어제보다는 조금 비싸고 질은 상당이 떨어지는 곳으로 좋은 거 한가지는 루브르 뮤지엄 (Musee du Louvre)에서 가깝다는 거 사실이였다. 창문은 고장나서 찬 바람이 술술 들어오고 TV도 잘 안 나오고 지저분하고..흑흑..어제 묵었던 곳이 그리웠다. 우리는 빨리 자야 내일이 온다며 8시 쯤 침대에 누었다. 체온 유지를 위해 웅크려 잤더니 아침에 일어나니 허리가 부러지는 듯하고 발목은 빠지는 듯이 아팠다. 잉잉..

Jasmine  

*자료제공: Life in Lond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