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세 뮤지엄 / 나이트 라이프 - 파리에서 (4)
2001년 4월 19일 목요일 날씨 춥고 비 가끔 오고 해도 빤짝하고
오르세 뮤지엄(Musee d'Orsay)을 사수하라! 여기는 아침 10시부터 열기 때문에 가뿐하게 일어나서 대충 무거운 건 나두고 길을 나섰다. 지하철이 아니라 국철인 C선을 타고 갔는데 이건 2층짜리 기차였다. 우린 왜 그리 2층이라면 좋아서 안달인지~ 버스도 2층 버스, 침대도 2층, 기차도 2층이면 왠지 신기해 죽는다. ^^ 뮤지엄에 내려서 후다다닥 뛰어가니 우리 앞엔 20여명의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9시 15분이었는데도 말이다. 믿을 수 없이 부지런한 사람들이 참 많았다. 벌벌 떨며 문이 열기만을 기다렸다. 10시가 가까와 오자 우리 뒤의 줄은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길게 늘어서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 뮤지엄은 꼭 가보고 싶었던 터라 아무리 추워도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었다..크크. 근데 정말 웃기는 짬뽕같은 년이 하나 있었으니, 가지고 있던 가이드북을 보아하건데 이탈리언이다. 멍청하게 생겨서 우리 뒤에 스윽 들어오면서 계속 책을 읽는 척 하는 거다. 그 뒤의 미국인 부부도 황당해서 암말 안하고 어떻게 하나 지켜보았는데 결국 그 여자애는 단아한 표정을 지으며 당당하게 새치기를 하고 우리 뒤에 입장했다. 정말 웃겨~ 우리는 미국인 부부랑 조소를 보내며 잠시 뒤에서 씹어줬다.
오르세 뮤지엄은 주로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화가인 드가(Degas), 마네(Manet), 모네(Monet), 르느와르(Renoir), 세잔느(Cezanne), 반 고흐(Van Gogh)등의 귀중한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는 곳이었는데 소담한 규모에 정말 정말 멋진 곳이었다. 예술을 잘 모르는 나도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왠지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 밖에도 19세기의 조각품들과 자연주의, 상징주의 미술작품도 전시하고 있었는데 말로 표현 할 순 없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곳이었다. 미국의 어느 학교에서 단체로 관람와서 선생님인듯 싶은 여자분이 설명해 주는 반 고흐 작품을 들으면서 역시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은 느끼는 것이 다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뭘 모르고 받는 느낌은 그저 좋다, 나쁘다, 아름답다 정도의 피상적인 것이지만 그 선생님이 설명해주는 바에 의하면 반 고흐의 작품에서 파란색과 노란색은 긍정적이고 밝은 정서를 의미하며 인상주의 화가들은 색을 하나의 언어로 같은 대상을 두고도 서로 다른 표현(translation)을 해냈다고 말했다. 이 시기의 화가들은 색감에 대해서도 일반적인 해석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에 따라(personal symbolism) 표현하려 했고 특히 반 고흐는 밀레(Millet)와 일본화풍(Japanese printings)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렇구나..다음에 여기 뮤지엄에 올 때는 되면 공부를 더 하거나 아님 오디오 가이드 투어를 해야 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감상을 끝내고 나와서 젊음의 거리인 St-Germain 으로 갔다. 이미 배가 많이 고파진 터라 벼르고 벼르던 코스 식사를 해 보기로 했다. 레스토랑마다 점심 메뉴는 고정 메뉴로 싸게 나와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밖에서 확인해 보고 가격이 대충 적당하다 싶으면 들어가서 먹으면 된다. 거리 주변엔 많은 레스토랑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좀 붐빌것 같은 곳에 들어갔다. 우리는 Entree(starter)-Plat(main)-Dissert로 구성된 3 course 메뉴를 시켰다. 첨에 나온 것은 옹아 샐러드였는데 역시 맛있었다. 그리고 메인으로 나온 페퍼콘 소스 비프 스테이크는..이것이 정말 진정한 스테이크의 맛이구나 라고 느낄정도로 맛있었다. 첨에 칼로 썰으니까 벌건 피 같은게 나오고 옆의 단면을 쓰윽 보니까 양가에는 회색빛이었으나 안으로 갈 수로 빨간게...한 마디로 덜 익은 것 같았다. 이게 말로만 듣던 rare인가 하는 생각에 촌스럽더라도 완전히 익혀 달라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 아냐 이것이 바로 프랑스 요리야 하는 생각에 잘라서 입에 한 조각 넣었더니... 우아~ '살살 녹는다'는 표현을 이 때 쓰는 것이리라! 정말정말 맛있었다. 고기를 오랫만에 먹은 탓도 있겠지만 정말 맛있었다. 이 말 밖엔 할 수 없을 정도로. 프랑스 인들이 영국 요리가 왜 그렇게 맛이 없다고 생각하는지 절절히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가 여기서 먹는게 고급 요리도 아니고 이런걸 맬맬 먹다가 영국가서 피시 앤 칩스 먹어야 하니..프랑스 인이 영국음식을 보고 '혀에 대한 테러'라고 했다지? 후후 이해가 된다. 근데 느낀건 확실히 프랑스에는 비만인구가 영국보다는 적다는 거다. 튀김요리보다는 단백질 가득한 healthy eating을 해서 그런지 보기 싫을 정도의 뚱뚱한 사람들은 관광객 말고는 볼 수가 없었다.
점심을 먹고 자꾸 배가 아픈게 이상해서 화장실에 가보니 으..원치 않는 일이 발생했다. 난 첫날 둘쨋날은 배가 엄청 아픈데..우쒸...일단 근처 수퍼에 가서 프랑스제 생리대를 하나 사서 대충 처치 하고 주희보고 쇼핑을 하라고 말한 뒤 나 먼저 집으로 돌아왔다. 아니나 다를까 몸이 계속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잠이나 자자 싶어서 TV를 켜서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가 어디서 많이 보던 얼굴이 있어서 자세히 보니 바로 영국에서 방영되는 유로 트래쉬(Eurotrash, 유럽 여기저기의 저질스럽고 코믹한 내용을 묶어서 진행)의 사회자인 앙트완(완전히 프랑스 발음으로 영어 사회를 본다.)이었다. 딱 보기에도 심각한 내용의 드라마인듯 한데 앙트완이 터프가이 주인공으로 나오는게 아닌가? 우헤헤~ 유로 트래쉬만 생각하다가 보니까 넘 웃겼다. 쇼핑하다 별 건진게 없다며 주희도 곧 돌아왔고 나의 생리통은 점점더 심해져갔다. 도저히 안될 것 같아서 근처 녹색 십자가 네온 사인이 있는 약국(Pharmacie)에 가서 진통제를 사 먹었다. 다행히 약사가 영어를 알아들어서 살 수가 있었는데 먹고 다시 숙소에 와서 좀 누워 있으니까 나아졌다.
저녁이 되니 이제 거의 아무런 통증이 없어서 첨으로 파리의 나이트 라이프를 즐기러 나갔다. 어디를 갈까 두리번 거리다가 에펠탑의 야경을 보기로 했다. 걸어서도 10여분 정도 밖에 안되는 거리라 슬슬 걸어갔다. 세느강변을 고즈넉히 바라보며 우뚝 서있는 에펠탑은 위풍당당 그 자체였다. 리프트를 타고 올라갈까 말까 하다가 탔다. ^^ 꼭대기까지는 못가고 2층까지 갔는데 런던아이를 타고 런던을 내려다보는 느낌과는 또 달랐다. 무지 춥긴 했지만 에펠탑에서 내려다 본 파리는 한마디로 부드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리에는 미국인 관광객들이 무지 많다. 같이 탄 리프트의 70% 정도는 미국인 20%는 일본인들로 보였다. 일본인 단체 관광객들이야 어디든 많지만 파리에서 보이는 미국인들은 노인들, 학생들, 애기와 젊은 부부등 남녀노소 구별없이 각양각색이다. 에펠탑에서 엽서 몇 장을 사고 사진을 좀 찍고 다시 내려왔다. 오후 8시가 넘었지만 아직 불을 안켜도 환하다. 그리고 다시 걸어서 에펠탑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정면의 트로카데로(Trocadero)에 올라갔다. 재작년 겨울에 왔을 때는 2000년 까지 몇일이 남았다는 J-75 (영어의 Day 대신 불어의 Jour) 네온 사인이 에펠탑에서 반짝였는데 오늘이 벌써 2001년 하고도 4월이라...정말 시간이 빨리 간다. 지나가는 어린 남자애들이 '니하오'를 외치며 장난을 건다. 가소로운 것들.
밖에 더 있고 싶었으나 점점 내 레이어드 룩으로는 소화할 수가 없어 숙소로 다시 돌아왔다. 근데 점점 배가 고파오는 것이었다. 하긴 점심 먹은지 한 참이 지났지..그래서 다시 밖에 나가서 어디 맛있는 데 없나 두리번 거렸다. 영국과 다르게 먹을 곳도 많고 다 맛있어 보인다. 눈 앞에 들어온거 차이니즈(같기도 하고 아님 타이, 베트남?) 부페집. 들어가니까 진열대에 보기에도 먹음직스런 깐쇼새우, 국수, 카레 볶음밥, 커다란 동그랑땡, 고기 볶음, 야채 스터 프라이 등 언뜻 보아도 20가지가 넘는 음식들이 있었다. 주인 아저씨도 영어를 전혀 못해서 거의 손가락으로 대화를 했다. 음식 가르킬 때, 양 얘기할 때...아 답답해! 아저씨는 각 요리를 네모난 투명 프라스틱에 하나하나 담아서 나보곤 저기 자리에 가서 앉아 있으라는 손짓을 한다. 가서 기다리니까 커다란 쟁반에 플라스틱 그릇에 따로따로 요리를 담고 중간에는 커다란 접시를 놓아 갖다준다. 음식들을 접시에 덜어 예쁘게 배열해서 먹으라는 뜻이겠지? 그래서 각 플라스틱 그릇에 담긴 음식들을 덜어 접시에 착착 깔아 놓고 케찹같은 칠리 소스를 듬뿍 뿌렸다.
한 입 먹는데..우아~ 영국에서 먹던 차이니즈 테이크어웨이(Chinese takeaway) 하고는 수준이 다르다. 이렇게 맛있을 수가! 멈출수가 없었다. 이거저거 꽤 많이 담았는데도 포크로 후루룩 후루룩 정말 잽싸게 한접시를 해 치웠다. 이거 다 먹어도 그냥 소호 차이나타운의 평범한 식당 바베큐 포크 라이스 정도의 값 밖에 안된다. 그냥 동네에 있는 약간은 허름한 식당도 이정도의 수준의 맛을 자랑한다면 도대체 다른 음식점, 또 고급 음식점은 얼마나 맛있단 말인가..? 경외감..성급한 일반화일지는 모르겠지만 파리에선 적어도 먹는 것에 한에서는 아무데나 들어가도 맛이 기가막히다는 인상을 주는 순간이었다.
맛있게 먹고 즐거운 마음에 배를 통통 두드리며 밖으로 나갔다. 꽤 늦은 시간이었는데도 그리 어둡지는 않았다. 집에 가기전에 내일 아침으로 먹을 빵하고 음료수를 사려고 수퍼에서 이것저것 고르고 있는데 어떤 남자랑 부딪치게 되었다. 파르동을 하면서 슥 무시하려 하니까 그 남자가 갑자기 'I think I saw you around Eiffel Tower.' 하면 유창한 영어로 말을 건넨다. 파리에선 영어 하는 사람만 만나도 왠지 반가운 생각에 그래 좀 전에 거기 갔다왔다고 말을 했다. 그 남자는 근처의 호텔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오늘 자기 생일이라 하루 쉰다며 나한테 이것저것을 물었다. 그다지 나쁜 사람으로 보이진 않아서 그냥 적당히 대꾸하니까 그 남자가 파리의 나이트 라이프를 즐기지 않겠냐며 시간 있으면 술 한잔 하잔다. 그래서 잠시 생각을 하다가 그래 뭐 맥주 한잔이 대수냐 싶어서 그러겠다고 하니 남자 병맥주를 한 포대 사서 근처 철교 및 벤치로 가잔다. 벤치 여기저기에는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이 사람은 주베르라는 이름의 하프 이탈리안 하프 모로칸으로 프랑스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좀 살다 온 사람으로 현재 여기 호텔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맥주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꽤 무거운 주제로(삶이 어쩌고 저쩌고, 운명이 어쩌고 저쩌고, 인종차별은 없어져야 한다 뭐 이런 별 재미는 없는..^^) 잠시 담화를 나누었다.
주베르는 파리가 무척 맘에 드는것 같았다. 영국에는 한번도 가보질 못했다며 런던은 어떤지 묻고 내가 모로칸 선생한테 벨리댄싱을 배운적이 있다고 하니까 아라빅 노래를 불러주겠다며 조금은 익숙한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유쾌한 남자였다. 근데 결정적으로 바깥 공기가 점점 넘 추워졌다. 자기가 입던 가죽자켓을 벗어 주었는데 이젠 이 사람이 추워지는 갑다. 자기 집은 내가 묵고 있던 호텔의 반대편에 위치한 아파트였는데 자기 생일이라고 하니 잠깐만 들어가잔다. 근데 사실은 이 상황이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보다 너무 잠이 와서 못 들어가겠다고 했다. 나를 못 믿냐(솔직히 첨 본 널 내가 어떻게 믿냐?), 나는 여기서 일하고 여기 사는 사람들 다 안다(걔들이 난 모르잖아?), 5분만 같이 내 아파트에 들어가서 집에 가득 쌓여 있는 CD를 듣자(5분 동안 무슨 음악을 들으며 나도 한국 집에 가면 너보다 CD 더 많어.)는둥 왠지 좀 미심쩍은 소리를 해댔다. 별로 몸도 안 좋은데다가 술까지 마셔 거의 잠이 눈앞에 대롱대롱한 상태라 미안하다 그러고 집에 왔다. 그 사람 내년에도 파리에 올 수 있겠냐고 슬프게 물어본다. 나는 maybe라 짧게 대답하고 호텔로 돌아가자마자 뻗어버렸다. 파리의 (짧은) 나이트 라이프는 이렇게 끝났다..잉..
*오르세 뮤지엄: http://www.musee-orsay.fr
매주 월요일은 휴관
에펠탑: http://www.tour-eiffel.fr
Jasmine
*자료제공: Life in London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