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심하다 심해!
2001년 4월 23일 월요일 날씨 여전히 추움..
학교에 24시간 여는 컴퓨터실이 있다. 집에 있으면 공부도 안되고 잡생각만 날것 같아 자료나 찾을겸 해서 아침부터 가방을 싸서 왔다. 몇몇 몰상식한 것들이 꼭 시끄럽게 떠들기 때문에 오늘은 예전 초등 동창이 선물해준 Chet Baker의 감미로운 Jazz CD에 이어폰도 챙겨갔다. 학교 컴실에는 나만의 명당자리가 있는데 역시 아무도 없었다..히히. 모니터도 평면에 17인치, 무엇보다 이젠 조금은 어색하기도한 무료 고속 인터넷, 그리고 CD를 넣고 유유히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료 고속 인터넷은 상당한 유혹이자 방해꾼이다. 집에서는 아직 모뎀에 돈을 내고 쓰는지라 첨에는 정말 열터지게 짜증이 나서 유니온에도 항의 하고 엄청 난리쳤는데 별 소득없이 이놈들 끝까지 sorry로 때우는 거다. 그렇다고 집에서 안 쓸 수도 없는 일. 이런 생활에 적응이 되니까 아이러니하게 한가지 좋은 점이 생겼다면 집에서 인터넷 쓸 때는 정말 값지게 쓴다는 것. 메모지에 내가 당장 반드시 가야할 사이트 적어두고, 이미지 다운 못 받는 기능도 설정하고, 무조건 저장 저장. 그리고 15분정도가 넘으면 끊는다. 인터넷을 오래 쓸 수 없으니 책도 가끔 읽고, 자연도 감상하곤 한다. 그러면서 인터넷을 보는 눈도 조금은 달라졌다고 할까?
문득 생각해본다. 한국의 그 최첨단 인터넷 인프라는 과연 무엇을 위한것인가하고. (방금 옆에 앉은 넘의 휴대폰이 음악 소리가 들리는데 '박첨지네 밭있어, 그래그래서'다. 이거 우리나라 노래 아니었구먼..헐헐 ^^) 정말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그만큼 좋은 인프라가 필요할까? 우리 생활에 이로움을 많이 가져다주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꼭 그만큼 우리가 인터넷에 의존할 필요는 있을까? 매일매일 하루 인터넷을 두시간 정도 쓴다고 가정했을 때 정말 냉정하게 따져서 우리가 꼭 필요한 걸 보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내 경우는 두시간 중 평균 30분도 안될것 같다..쩝)
예전엔 누가 인터넷 사용에 있어서 조금만 비판을 가해도 나는 말마따나 게거품을 물고 대들었다. 아니 이사람 어디 구석기 시대에서 건너왔나? 인터넷이 얼마나 좋은데! 정보의 보고요, 전세계의 친구들과의 의사소통 창구이며 사이버 여행도 다닐 수 있고 등등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인터넷의 장점 리스트를 줄줄 나열해 가며 말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허나 나를 마루타삼아 여러 테스트를 해 본 결과 인터넷이 너무 잘 되면 몇 가지 단점이 있다. 첫째, 일단 보고 또 본다. 이멜이던 사이트던간에 그냥 죽치고 앉아 본다. 웬지~ 편지가 와 있을 것 같다. 둘째, 누르면 자꾸 딴 대로 가니까(hypertext) 웬지 한 곳에 머물면 안 될 것 같아 계속 이리저리 방황하다 결국 아무것도 제대로 못보고 몇 시간 보내는건 기본이다. 따져보면 남는거 하나도 없다. 셋째, 원래 자료 찾으려는 사이트는 안보고 딴 사이트에만 눈이 가서 잡생각 듬뿍에 업무 효율도 떨어진다. (혹시 나만??) 그렇다고 날 Luddite(러다이트)라 보기엔 인터넷을 너무 좋아하는 건 사실이다. 다만 영국물이 좀 들었는지 운동화에 노메이컵에 추리한 옷차림, 그리고 좀 불편한 생활이 이제 너무나 자연스러원 진것이겠지..^^
그런데 정말 이 컴실에서 도저히 참을 수 없는건 모발폰의 소음 공해도, 애들이 잡답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 뭐냐? 바로 드문드문 후각이 적응되기전까지 날 미치게 만드는 외국애들의(나도 외국앤데..?) 암내다. 단순히 겨드랑이 땀내라고 봐주기엔 정말 한계에 이르게 하는 정도의 강도를 지닌 애들이 종종 이 방에 들어 올 때면 정말 속이 울렁울렁 메슥메슥에 호흡 곤란증까지 온다. 암내하니까 생각이 나네. 예전에 고등학교 다닐 때 옆옆반에 상상을 초월한 냄새를 달고 다니는 여자애(일명: 암녀)가 하나 있었다. 정말 그 반 앞을 지나가기마저 힘들정도 였는데-그 반에서 1년간 공부한 애들에겐 심지어 경외감마저 든다-하루는 젤 친한 친구랑 시내 문구센터에 다이어리를 사러 나갔다. 아주 큰 규모의 문구점이었다. 우린 지하층에서 여기저기 다양한 무늬의 다이어리를 고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익숙한 냄새가 공기를 제압하는 것이었다. 나랑 그 친구는 순간 동시에 얼굴을 딱 마주치면서 '혹시 암녀?'라고 (우스개 소리로) 되뇌였다. 그리고 입구를 보는데 정말 그 애가 걸어들어 오는 것이다...! 우린 너무 놀라서 웃지도 못하고 후다다닥 문을 나와 버렸다. 푸헐헐~
그러나 암녀여, 너의 냄새는 여기에 있는 애들에 비하면 향기나 다름없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나의 예리한 후각으로 보았을 때 이 냄새의 주인공은 나를 중심으로 7시 방향에 앉은 옆/뒷모습만 보이는 더벅머리 총각으로 예상된다. 머리가 띵해서 밖에 바람을 쐬고 들어오니 그 냄새가 또한번 신선하게 코를 찌른다. 안되겠다...공부에 푹 빠져 승화를 시키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참고) Luddite n.(명사)
1. Any of a group of British workers who between 1811 and 1816 rioted and destroyed laborsaving textile machinery in the belief that such machinery would diminish employment.
(1811년에서 1816년 사이 영국에서 일어난 산업혁명 당시 공장의 자동화로 인한 실직에 대한 두려움으로 직조기계 파괴운동 폭동을 일으킨 직공들)
2. One who opposes technical or technological change.
(기계및 그로 인한 자동화에 반대하는 사람)
Jasmine
*자료제공: Life in London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