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TV 광고는 그렇게 독창적이라면서?
2001년 4월 29일 일요일 날씨 비교적 좋음
한 때 광고계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그럼 꼭 옆에서 거드는 아낙이 있다. '언니가 도대체 안해보고 싶은게 뭔데??' ^^) 독창적인 카피는 물론이고 깜짝 놀랄만큼 창조적인 콘티를 짜서 광고하는 상품이 소비자에게 강한 어필을 하게 되는 것. 생각만 해도 넘 멋지다. 그래서 여기 와서도 TV 광고를 참 유심히 보게 된다. 그러면서 영국 광고의 독창성은 세계 최고라는 소문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는데...
우리나라의 광고와 비교해 보았을 때 그럴 수 밖에 없을 거라는 몇가지 차이점이 있다. 나는 광고와 관련된 전문적인 식견이 없는 터라 전문가가 뭣이라고! 하며 반론을 제기하면 별로 할 말은 없지만 순수 소비자의 입장에서 확실히 눈에 띠는 차이점이 몇 개 있으니.
첫번째, 한창 뜨는 연예인이 나와서 한창 뜨는 유행어로 대충 때워버리는 단발성 광고가 거의 없다. 이런 광고의 효과는 너무 순간적이다. 사실 광고는 그 제품을 소개해야 하는데 연예인의 현재 인기에 지나치게 의존하다 보니 (나같은 경우엔) 시간이 지나면 뭘 광고했는지 까먹게 된다. 그리고 잘 생각해보면 이거 소비자 우롱이다.
그럼 영국 광고는 어떤가? 정말 다양한 계층의 안 유명한 사람들이 나와서 재밌기도 하고 또 상당히 현실적이다. 똑같은 사람이 여기저기 나오지도 않는다. ( CF스타 이런 말 못들어 본 것 같다.) 나도 맘만 먹으면 아무 광고에 엑스트라 자리라도 하나 얻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차라리 유명한 연예인은 이미지 관리 때문인지 광고 출연을 자제하는 것 같다. 사람이 안 나오는 경우도 많다. 월리스와 그로밋이 만들어 진 곳답게 클레이로 만든 것, 애니메니션, 봉제 인형, 만화, 개나 고양이, 애기들 등등 일단 나오는 등장 인물들이 아주 다양하다. 광고 시간도 광고의 특성 및 시간대 별에 맞게 다양하다. 우리나라는 총 광고 시간이 15초로 제한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여기는 짧게는 3-4초 짜리도 있고 길게는 30초가 훨씬 넘는 것도 있다. 이런 시간적 유동성이 더욱 창조적인 광고를 고무하는게 아닌가 싶다.
두번째, 우리나라에서는 무조건 야하다고만 여길 것 같은 여성의 몸이나 성적장면을 암시하는 것들이 기막히게 멋지게-때로는 아름답게, 때로는 코믹하게- 광고속에 잘 스며든다. 그래서 그게 전혀 야하다는 생각조차 안든다. (사실 영국 광고는 프랑스나 이태리에 비하면 그 노출도를 비교해 볼 때 야하다고 볼 수도 없다고 한다.) 여성의 보디로션 광고에 아름다운 여자의 몸에 하얀 실크를 감아 (문제가 될 부분은 기술적으로 잘 가린다. ^^) 빙빙 돌면서 부드러운 나레이션과 함께 나오는 것을 비롯하여 남녀간의 사랑이 진행되기 직전 약간의 신음소리와 함께 벗겨진 옷이 툭툭 화면으로 날아오는데 남자의 신발이 던져지는 순간 모든 소리는 다 그치고 반쯤 벗은 남자 짜증내면서 방에서 나와 신발을 다시 줏어서 100만 파운드 짜리 보석인양 곱게 쓰다듬으며 여자가 있는 쪽으로 원망의 눈길을 보내는 신발 광고등 대충 떠올려 봐도, 특히나 마케팅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탐날 만큼 멋진 광고가 참 많다. 우리 나라 사람들도 창의력 하나는 그리 뒤쳐지지 않을텐데 내 생각엔 지나칠 정도로 눈가리고 아웅하며 옭아매는 '성'의 삐뚤어진 사회 의식이 가장 큰 장애물이 아닐까 싶다.
세번째, 광고의 작품성에 신경을 많이 쓴다. 어떨 땐 광고 자체가 정말 넘 대단한 작품이라 이런 자그마한 상품에 필요 이상으로 돈/노력을 많이 투자하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광고를 위한 광고-실제로 신문에도 광고가 광고의 본 목적을 잊고 있다는 비판 기사가 난 적이 있었다.)이 드는 것도 있을 정도다. 이런 것들은 주로 이미지 광고로 대체적으로 이미 소비자에게 인지도가 큰 상품들에 많이 적용되는데, 예를 들어 유명한 맥주, 신문 등의 광고를 첨에 보면 도대체 뭘 광고하는건가 갸우뚱할 정도다. 넘 오버하면 (광고주들한테는)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진짜 멋지다 싶은 것이 많아서 눈이 똥그래지기도 한다. 이런 광고는 잠깐의 sales boost를 위해서가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으로 소비자들에게 세뇌를 시키는 것이리라. ^^ 또한 광고를 꼭 영어로만 하는게 아니라 불어, 일어, 스페인어, 중국어 등등 광고 내용에 크게 무리가 없는 선에서 다양한 언어와 더불어 다양한 인종들이 많이 나온다. 잘은 몰라도 영국의 많은 광고들이 세계 유수 광고제에서 상을 받았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예전에 TV에서 가장 인상적인 광고 100가지를 방영해 준 적이 있는데 10년 전 아니 20년 전 것도 지금 써도 괜찮을 만큼 멋있었다. 기술이 좀 촌스럽다 뿐이지 광고 자체의 창의성이나 독창성은 여전했다. 영국 광고의 명성이 한두 해만에 이룬 것이 아니라는 것과 더불어 광고 하나를 만들더라도 멀리 내다보며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인정하기 싫지만- 좀 부러웠다.
그러고 보니까 영국이 TV 프로그램에도 좀 강한 분야가 몇 개 있다. 뭐니뭐니 해도 게임쇼와 코미디. 참 포맷을 잘 만든다. 우리 나라에서 사행심리 조장이니 하는 소리가 여기서는 씨도 안 먹힐 정도로 몇 십억 턱턱 주는 ITV의 'Who Wants to be a Millionaire?', 독설이 담긴 진행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BBC1의 'The Weakest Link' (진행자는 Anne Robinson), ITV의 'Catchphrase' 그리고 Channel 4의 'Countdown' 등등 이 나라 애들 돈 얽힌 잘 만든 게임쇼 하나로 이리저리 수출해서 정말 돈 잘 번다. 복권(National Lottery)을 사도 10 million 파운드(한화 200억)는 우습게 터지곤 하는데 이건 세금도 면제에다 외국인이 걸리면 영주권이 나온다고 들었다. 예전에 -믿거나 말거나- 영국에 어학연수 온 터키인이 잭팟해서 몇 십억 따서 영주권 받고 떵떵 거리며 잘 산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앗 또 삼천포로..^^ 암튼 TV, 광고 분야는 참 멋지다. 우리 나라도 세계 광고제 나가서 상도 많이 타고 프로그램도 많이 수출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회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져야 하겠지만 말이다.
p.s. 어제 telly를 보다가 웃기는 게 하나 나와서 적어본다. 어떤 사람이 길가면서 새로나온 음식을 일반 소비자들에게 테스트 시켜보려고 두리번 거리다가 한 사람을 잡아서 이렇게 묻는다. "Are you peckish? (지금 배가 좀 고프세요?)" 그러자 아저씨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기를 "No, I'm Turkish. (아니요, 난 터키인인데요.)" 푸하~ 'peckish'와 'turkish'..! 터키 아저씨 identity가 넘 강했다..크크
Jasmine
*자료제공: Life in London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