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 부는 일본 바람
2001년 5월 5일 토요일 날씨 정말 정말 '쥑임'
아침에 창을 열고 하늘을 보니 이거 정말 심상치 않았다. 물론 아침에 날씨가 좋다고 그날 계속 내내 좋다는 가능성은 상당히 희박하지만 오늘은 웬지 감이 달랐다. 이런 날 집에 있기엔 너무 아깝다. 주희가 한국으로 돌아갈 날도 얼마 남지 않았고 가기 전 챙긴다는 선물들의 리스트가 내 팔뚝만 했기 때문에 오늘은 오빠 선물을 사기 위해 런던 북쪽의 Colindale 에 위치한 RAF(Royal AirForce) 뮤지엄에 갔다.
정확하게 말하면 뮤지엄 내에 위치한 기념품 숍에 갔다. ^^ 이 곳은 영국 공군 및 전투기의 역사와 발전사에 대해 전시해 놓은 곳으로 일단 그 규모가 엄청났다. 우리 오빠는 특히 공군 곡예 비행팀 (한국에는 Black Eagle, 영국에는 Red Arrows가 있다. 어디서 주워 들은건 많아가지고..^^) 에 무지 관심이 많으므로 Red Arrows를 보면 우선 닥치는 대로 바구니에 담았다. 부탁받은 F-16 Falcon 전투기가 그려진 티셔츠도 사고, 또 보기에도 멋있는 커다란 포스터도 두어장 골랐다. 그 외도 몇 개의 깜짝 선물이 있으나 오빠도 이거 보는거 아니까 말하지 않으리..^^ 선물을 받고 좋아할 오빠를 생각하며 주흰 상당히 흥분하는 듯 했다. (그러나 계산대 앞에서는 분위기 숙연해 지며 고개를 떨구었다..) 아무래도 남학생들이 이 쪽에 관심이 많을테니 영국에 오면 한 번 방문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참고로 이 곳의 웹사이트는 http://www.rafmuseum.org.uk 이다.
일단 과제 하나를 해결하니 좀 안심이 되었다. 다음은 젊음이 넘치는 옥스퍼드 스트리트로 나가보자. 오늘은 토요일이니 아마도 상당히 북적거릴 것이다. 지하철을 타고 두 정거장 가서 Golders Green 역에 내려 시내로 바로 가는 13번 2층 버스를 탔다. 예전에도 2층에 대한 막연한 동경에 대해서 얘기 했지만 2층버스, 그리고 젤 앞에 앉으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나랑 주희는 창 밖을 바라보며 여기저기를 구경했다. 나는 아무래도 파리보다는 런던이 더 좋다. 자유로움 속에서 웬지 모를 질서가 느껴지는 이 곳 런던을 나는 앞으로도 그리워할 것 같다. 어느새 시내로 접어들자 정말 장난이 아닌 인파로 까만/노란/그외 다양한 색의 머리들만 길에 수북히 보였다. 이렇게 날씨도 좋고 게다가 토요일이니 그럴만도 하지.
그러다 깜짝 놀란 것이 있었으니 왼쪽으로 보이는 Selfridges 백화점(http://www.selfridges.com) 이었다. 저번에 신문에서 5월 한 달 동안 이 백화점이 일본 도쿄의 쇼핑거리인 긴자로 변모한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올해가 Japan 2001로 일년내내 관광 홍보 행사가 여기저기 열리고 있다- 정말 그 말이 무색하지 않게 너무나 일본스러웠다. 1층의 거대한 쇼윈도우는 분홍색 벽지로 포장되어 Tokyo Life라 글자와 더불어 일본 디자이너의 옷들, Hello Kitty, 그리고 다른 여러가지 일본스런 상품들이 꽉꽉 메우고 있었다. 백화점을 출입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손에는 역시 Tokyo Life라 적힌 분홍색의 쇼핑백을 한 가득 들고 있었다. 게다가 이 백화점에서는 더욱 더 일본스런 분위기를 내려고 한 달 내내 일본인 엘리베이터 걸이 사요나라 서비스를 한다하니 상당히 놀랍다. 가까운 일본 친구의 말을 들어보면 일본은 지금 10년째 경기가 불황이고 실업률도 높아 자기도 학교 졸업하고 앞으로의 진로가 많이 걱정된다고 하는데 런던에서 보여지는 일본의 이미지는 여전히 쇼핑천국인듯 하다. 하긴 우리나라도 경기가 안 좋다 실업자 100만인이다 그래도 런던의 유명 브랜드 숍에 가면 정말 그런가..하는 생각이 드니까.
길을 내려 걸어가면서 은근히 복잡한 이 거리가 즐겁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대부분은) 사람들한테 많이 치이는 시내 한복판을 싫어하지만 가끔씩 그런게 그리울 때가 있다. 오늘이 바로 그런가 보다. ^^ 숍마다 꽉찬 사람들-웃음이 한 가득인 얼굴, 화가 잔뜩난 얼굴 또 무지 심각한 얼굴등등-을 킥킥대며 바라보면서 오늘 런던 센트럴에 나오길 참 잘 했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이윽고 배가 너무 고파져서 4시가 다 되어갈 쯤 차이나타운의 한 딤섬 전문집을 갔다. 며칠 전에 집 근처 타이숍에서 냉동 딤섬을 사 먹었는데 얼마나 맛있던지! 나나 주희나 입맛을 쩍쩍 다시며 오늘 함 맛있게 먹어보자는 생각에 몇 가지 종류가 다른 딤섬을 주문했다. 대나무 찜통 하나엔 기껏해야 3-4개의 딤섬이 들어 있어서 넘넘 감질 났다. 한통에 2-3파운드 씩이라 그것도 많이 먹으면 넘 비싸서(근데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을 듯 했다!) 한 4통 선에서 마무리 짓고 밥 하나를 시켜 맛있게 나눠 먹었다. 정말 맛있는 딤섬~ 다음에 친구들 꼬셔서 꼭 다시 한 번 와야지. ^^
요즘은 저녁 8-9시가 넘어서야 날이 어두워진다. 집에 올 때도 오후 2시 정도 밖에 안 된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 였으니까. 점심 때 푸짐하게 먹긴 했지만 밤이 되니 또 배가 고파서 주희가 어제 해 놓은 맛나리 카레를 또 한 그릇 수북하게 먹었다. 요즘 너무 많이 먹어서 살이 찌는 것 같다. 이러면 안되는데..아앙~
Jasmine
*자료제공: Life in London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