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은 슬픈거야.
2001년 5월 10일 목요일 가끔 천둥번개가 쳤지만 맑은 날씨
내일이면 이제 주희가 여길 떠나 한국으로 돌아간다. 내 친구들하고도 서로 많이 친해진 터라 오늘 송별회를 하기로 했다. 이 파티를 위해서 독일에 간 완타니도 일정을 좀 서둘러 오늘 오후에 영국에 돌아오고 에미코는 일본에서 지난 4일에 왔다. 마리아는 스페인 마드리드에 놀러 갔다가 1일에 와서 종종 도서관에서 보았다. 저녁 7시쯤 우리집에 모여서 간단한 파티를 하기로 하고 주희랑은 학교 유니온에서 매주 목요일마다 열리는 과일/야채장에 가서 필요한 야채랑, 체리, 귤등의 과일을 좀 샀다. 오랫만에 노라와 엠마뉴엘을 만나서 볼인사(움아~ 움아~)를 함 하고 잠깐 얘길 했다. 노라는 우리집에 정말 맨날 전화를 거는데 한번도 연락이 된 적이 없다며 도대체 어디갔었냐고 그런다. 하긴 집에서 매일 인터넷(학교 이멜과 웹사이트 이용은 무료)을 걸어놓고 있거나 밖에 나가 있었으니 전화가 될턱이 있나. 이주전에 헝가리에서 돌아와서 계속 학교에 있다고 했다. 내가 낼 동생이 간다고 기운없어 하니까 'Don't be so sad, we are here for you!' (너무 슬퍼하지마, 우리가 있잖아!) 하며 엠마뉴엘이랑 같이 어깨를 두드려 준다. 고마운 친구들~ ^^
날씨가 너무 좋아 집에 바로 들어가기가 좀 뭐했다. 그래서 신문지를 구해 기숙사 앞 잔디밭에 깔고 앉아서 우리는 체리를 까먹었다. 씨를 툭툭 잔디밭에 던지며 내가 던지는대로 체리나무가 다 자라면 얼마나 좋을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 주희가 여기 있은지 정말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어느새 4개월이 넘었다. 가끔 다툼도 하긴 했지만 너무나 많은 의지가 되었고 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친구들하고 약속을 하면 서로서로 시간이 안 맞을 때가 많아서 좀 그랬는데 주희랑은 맨날 같이 있으니까 날씨 좋으면 서로 찡긋 하면서 시내로 나가고 사진 찍으러 가고 장보러 가고 또 빨래도 하러 가고..자매끼리는 원래 죽이 잘 맞지만 주희랑 나는 특히 농담 주고 받기 파트너로서는 최고이다. 나의 고난도(?) 농담에 웃을 수 있고 더 나아가 대꾸도 잘 하고..나중에 내가 토크쇼 진행자가 되면 반드시 보조로 기용할 생각이다. ^^ 내일이면 이것도 끝이라는 생각을 하니 한숨이 휙 나왔다. 잔디밭에 나란히 앉아서 서로 앞을 바라보며 나: '정말 내일 가능교?' .주희: '나 없어도 밥 좀 잘 챙겨 먹능교. 으이?' ('-하능교' 는 우리 형제들 사이에서 즐겨쓰는 말맺음이다. ^^) 하면서 염려어린 대화를 했다.
시계를 보니 4시가 좀 넘었다. 이제 애들이 올테니 음식 준비도 해야되고 해서 우린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원래는 주희가 짬뽕을 하려 했는데 매운거 못 먹는 마리아가 걱정이 되서 뭘 할까 다시 생각하다가 카레라이스로 메뉴를 변경했다. 그래도 여전히 매운건 마찬가지이지만. 유난히 매운걸 밝히는 주희는 (우리나라) 인도 카레에 타이 카레+정말 매운고추 서너개+후추+각종 매운맛을 내는 향료를 가득 넣는다. 고개를 설레설레..내가 제발 좀 안 맵게 하자 해도 막무가내..그래도 맛있으니 먹어준다..히히 그리고 오징어 양념 구이도 만들었다. 젤 먼저 완타니가 좀 일찍 와서 독일서 사온거라며 보기에도 먹음직스런 소세지, 그리고 주희 선물, 주희편에 부모님 갖다드리라는 선물까지..감동~ 나도 프랑스에서 사온 엽서를 몇 장 주었다. 내가 가지려고 산 거라 좀 찔리긴 했지만 말이다. ^^ 30분 후에는 마리아가 도착했다. 마리아는 대단한 요리사답게 카나페 같은 애피타이저와 케익을 준비했다. 알록달록 예쁜 꽃무늬 치마를 입고 왔길래 넘 예쁘다고 하니까 직접 만든거라나..(재주도 많어여~).
항상 시간 약속을 조금씩 안지키는(!) 에미코를 기다리다가 우린 다들 넘 배가 고파져서 먼저 먹기로 했다. 오늘 센트럴 런던에 나갔다 온다 했는데..아 맞다. 요즘 지하철, 기차 파업 얘기가 많던데 아마 그 때문이겠지 하며 마리아의 애피타이저를 우선 먹었다. 정말 정말 맛있었다. 피망을 잘게 다져서 냄비에 물을 조금 넣고 같이 넣은 후 식초와 설탕을 적당히 배합해서 국물을 만들고 끓여서 카라멜화 한 다음 시중에서 파는 크림 치즈위헤 삭 부어서 소스를 만든 후 저칼로리 크래커 위에 살짝 발라 먹는거였는데..감동~! 담에 꼭 실습을 해봐야지. ^^
그리고 모두에게 카레라이스를 대접했는데 뭐든지 잘 먹는 완타니는 맛있다고 몇 그릇을 먹는데 반해 불쌍한 마리아..큰 유리컵의 물을 몇 잔이나 비워도 결국은 다 못 먹었다. 맛있긴 한데 너무 hot & spicy 하다며..우린 좀 미안했다..그러나 어쩌랴..크크. 8시가 넘자 에미코가 드디어 왔다. 직접 만든 파스타 샐러드와 훈제 연어를 가지고 와서 눈이 동그래진 마리아(얼마나 배고팠으면..) 기쁜 맘으로 아주 잘 먹었다. 우리는 배가 불렀지만 에미코가 혼자 먹기 쑥스럽다 해서 와인 한 잔과 더불어 맛있게 싹싹 비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리아의 케익을 잘라서 디저트로 먹고..
나이가 들면 뭔가를 맛있게 먹고는 꼭 등을 기댈 평평한 곳을 찾게 된다. ^^ 나는 차가운 벽에 기대고, 완타니랑 마리아는 냉장고에 기대어 열을 식히고, 에미코도 두리번 두리번 기댈 데를 찾는다. 여기서 발전하면 결국 바닥에 눕게 되는데 오늘 독일에서 날아온 피곤한 완타니 참다참다 바닥에 누워버렸다. 하하! 맛있게 먹고 난 후라 그동안 재미있었던 얘기로 다들 웃음바다가 되고 (특히 마리아는 정말 정말 웃긴다!) 내일 가는 주희한테 다들 준비한 선물을 주었다. 마리아는 자기 요리중 그리 어렵지 않은 요리법을 적어서 줬는데 한국서 재료를 구할 수 있을지 좀 걱정스러워 하는 눈빛. 에미코는 일본서 사온 아주 일본스런 장식품이며 학용품등을 주었다. 배려해 주는 마음씨가 참 고마웠다.
파티는 11시 30분 쯤 끝나고, 애들이 가고 난 후 우린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그릇을 씻고 방 청소를 좀 했다. 근데 배가 지독히 안 꺼지는거다..얼마나 먹었으면..^^ 자정이 훨씬 넘어 침대에 누웠다. '오늘이 마지막 밤이네.' 하며 연신 쓸쓸한 표정으로 얘길 좀 주고 받았다. 정말 마지막이네..그러게...또 다시 우리에게 이런 시간이 올까...몰라. 헤헤..가기 싫지?...그렇지 뭐..휴...그렇게 마지막 밤은 저물어 갔다.
Jasmine
(다음날 히드로 공항에 짐을 낑낑 대며 배웅해 주러 갔다. 정말 마지막이다..모든게 정이 들었다며 못내 가기 싫어하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주희. 그렇게 바이바이를 하고 허탈한 심정에 집으로 와서 침대를 정리하다가 주희가 써놓고 간 노란색 편지를 읽게 되었다. 지지배...글 하나는 감동스럽게 잘 쓴단 말야..핑도는 눈물에 목이 메였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그지?)
Jasmine
*자료제공: Life in London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