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미코의 생일파티
2001년 2월 24일 토요일 하늘은 파랗지만 무지 쌀쌀
오늘은 에미코의 생일이다. 어저께 완타니랑 전화로 얘기하면서 요즘 숙제 때매 다들 허덕이긴 하지만 친구 생일이니까 간단히 파티라고 해야 안되겠냐고 했다. 당근! 에미코는 에세이 낼 것이 너무 많아서 자기 생일이지만 남자친구도 오지 마라고 했으니 파티하는 거는 히로한테 비밀로 하기로 했다. 그래서 가장 조용한 우리집에서 파티를 하기로 했고(장소제공), 완타니는 자기 스타일의 닭다리 구이, 베네주엘라 친구인 마리아는 직접 초코렛 크림 케익, 그리고 에미코는 자기 생일이니까 특식 스시를 만들어 온다고 했다. 저녁 7시에 모이기로 하고 오전에 주희는 에미코 선물을 사러 시내에 나갔다. 정말 오랫만에 진공청소기로 구석구석을 밀고, 쓰레기통도 씻고 책이 산더미처럼 쌓인 책상도 대충 치웠다. 그리고 도서관에 가서 빌린 책 좀 반납하고 다음 주 금요일에 내야 하는 에세이의 초안을 대충 잡고 5시 쯤 집에 오니 주희가 집을 꼬마 애들 생일 파티 하는 냥 온갖 리본으로 예쁘게 장식을 해 놓은 거다. 하하하. 에미코 무지 좋아하겠군. 테이블에도 빨간 풍선이 가득한 보자기(?)를 깔고 대충 준비가 되었을 무렵 차례로 애들이 오기 시작했다.
다들 왕따시만한 가방에 맛있는 냄새가 솔솔나는 비장의 음식을 가져 온 것이다. 아 조아조아~ 테이블에 각종 음식이며 접시, 음료수를 준비해서 다같이 모여 앉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감격한 에미코는 몇 번이고 고맙다고 했고 드디어 맛있는 음식을 시식할 시간. 에미코가 만들어 온 스시는 명절이나 특별한 날에 먹는 좀 다른 스타일로 나도 첨 먹어 보는 것이었다. 각종 야채와 새우, 연어 등의 비빕밥같다고나 할까? 그리고 완타니가 오븐에 구워온 닭다리 구이는 고소한 간장 양념이 일품이었다. 마리아의 케익은 정말 한 두번으로 나오는 솜씨가 아니었다. 물어보니 케익, 쿠키, 빵등을 만드는게 특기이자 취미라고 한다. 어쩐지..^^ 참 주희가 스시를 먹다가 애들한테 이거 김치랑 먹으면 어떨까 하는 제안을 하니까 완타니, 에미코 기다렸다는 듯이 Yes Yes Yes를 외친다. 왠지 맹숭맹숭한 일본 음식과 새콤한 한국식 총각 김치는 정말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다들 총각무 먹느라고 정신이 없을 정도니...^^
그리고 준비한 선물을 주었다. 선물이라 뭐 대단한게 아니라(예전에 파라한테 준거랑 비슷한 자급자족 형태) 한국에서 가져온 새 팬티 두장, 두보레 비누 하나, 조그마한 수첩 하나 그리고 카드. 쓰고 보니까 상당히 조잡했군..헐헐헐 ^^ 그래도 한국 말이 가득 적힌 것이 외국애들한테는 젤 이국적일 것 같았다. 물론 비용도 최소화할 수 있고. ^^ 에미코는 너무 예쁘고 마음에 든다며 무지무지 좋아했다. 하긴 외국 나와서 자기 생일을 기억해 주고 파티해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참 좋은거다. 그리고 오늘의 모임은 에미코 생일을 빙자해서 다같이 모여 그간의 스트레스도 풀고 이야기 꽃을 푸는 시간을 가진 셈이다.
우리는 이제 거의 끝나가는 수업에 대한 얘기를 하며 모든이의 가장 큰 관심사인 논문 얘기를 주로 했다. 이미 수퍼바이저는 거의 다 정해졌다. 여기에 사연이 있으니..며칠전 우연히 에미코와 완타니가 교수방에 갔다가 수퍼바이저 리스트를 입수하게 된것이다.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된 게 아니라 흥분하여 살펴본 결과 완타니와 나는 원래 생각했던 교수가 '간택'을 해줘서 별 불만이 없었는데 에미코는 계속 콘택하던 교수가 아닌 전혀 상관없는 분야의 교수가 찍은거였다. 흥분한 에미코는 화가 굉장히 많이 나고 또 한편으로는 그 교수한테 배신감마저 느낀 것 같았다. 우리는 위로도 하고 그 교수가 니 주제에 대해서 많이 알 수도 있다고 했으나 에미코는 단호하게 부정하며 이럴 수는 없는 일이라고 화가 머리 끝까지 나버려서 결국 집에 가서는 울었단다. 음..사실 수퍼바이저는 상당히 중요하다. 자기의 논문주제에 대해서 많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뭔가 자기가 얘기하기 편하고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 젤 좋은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내 수퍼바이저는 정말 좋은 교수님이다.
내가 처음 논문 초안을 냈을 때 교정을 본 사람이었는데 첨엔 굉장히 까다롭게 굴어서 무지 짜증이 났었다. 내가 보기엔 잘만 썼는데(!) 다시 쓰라는 둥, 주제가 너무 광범위 하다는 둥, 이 이론을 써 보라는 둥 유별나게 굴어서 제발 이 사람 걸리지 마라 하면서 다시 제출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얘기도 여러번 하고, 자료도 많이 얻고 또 새롭게 주제를 정립할 수 있었다. 정말 신실하고 내 질문에 정말 정성스럽게 답변을 해 주는 걸 보면서 내가 사람을 잘못 보았다는 생각이 띠딩 하고 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제는 나를 불러서 얘기하면서 내 논문 수퍼바이저가 되고 싶은 교수가 자기 빼고 두명이 더 있는데 니가 그 중에 특별히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바꿔도 상관없지만 별 문제 없으면 자기랑 같이 하는게 어떠냐고 호소하는 눈빛(슬픈 사슴의 눈..)으로 얘기하는데 아 이 교수랑 해야된다 하는 생각이 정말 강력하게 들었다. 아암..사람이 충직해야쥐! 암튼 예감이 무지 좋다. 다음 주 쯤엔 다시 만나서 2차 논문 계획 초안에 대해서 의논을 좀 해야겠다. 잘 쓰면 디스팅션이라도 줄레나..음하하하(꿈깨야지..^^)
암튼 그동안 바쁜 와중에 오늘의 파티는 여러모로 정말 좋았다. 맛있는 음식, 좋은 친구, 그리고 와인...이런 것이 정말 행복이겠지. 파티의 에너지를 받아 새로운 마음 가짐으로 아직 완성하지 못한 에세이를 또 써나가야 겠다. 요즘 여기 구제역(the foot-and-mouth disease) 때문에 난리지만 난 그래도 돼지고기 잘만 먹고 있다. 내일은 저번에 특제 코카콜라 치킨을 요리 해서 먹어보라고 직접 갖다 준 신디에게 답례로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줄 생각이다. 물론 주희가 대신 해주겠지만..크크크 ^^
Jasmine
*자료제공: Life in London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