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람들의 형식주의는 체면주의와 집단주의의 양면성을 띠고 있다. 우리에겐 '체면 깎이는 것'(losing face)이 배고파 죽는 것보다 더 못 견딜 일이다. 이렇게 없어도 있는 듯 '체'하는 것이 우리의 체면주의이다. 그런데 우리 체면주의의 또 다른 모습은 남들이 입고, 먹고, 소유하는 있는 걸 같이 입고, 먹고, 소유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어에 옆집 하는 대로 따라한다는 표현으로 'keep up with the Joneses'(이웃에 지지 않으려고 허세부리다)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에게 꼭 어울리는 표현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우리사회는 남들 다 하는 대로 따라하지 못하면 불안해하는 '집단 유행 신드롬'이 횡행하고 있다. 이러한 체면주의와 집단주의의 폐해는 허례허식과 몰개성으로 집약된다.
몇 년 전, 우리나라를 방문중인 한 미국인 친구를 호텔 로비에서 만날 일이 있었다. 때는 3월 말이었는데, 초봄치고는 날씨가 매우 따뜻했다. 그래서인지 그 미국인 친구는 반바지에 반소매 T셔츠를 입고 나타났다. 필자가 옷을 매우 시원하게 입었다고 했더니, 그 친구는 그렇게 입고 오면서 거리에서, 지하철에서 긴소매 윗도리와 긴 바지를 입은 다른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힐끗거리는 것 같아 아주 불편했다고 했다. 필자는 3월이면 절기상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문턱이고, 우린 날씨보다는 절기에 맞춰 옷을 입는 문화에 익숙해져 있어, 그의 여름 옷차림이 사람들에게는 좀 파격적으로 느껴졌을 거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는 내말에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날씨에 맞춰 옷을 입는 게 어떻게 구경거리가 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 못 하겠다는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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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원 刊 
